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실까?

미국에 있다보면 자선을 배푸는 사람들을 많이 접한다. 대단한 자산가들이 자신들의 부를 나누어주는 것을 비롯하여 사소한 물품이나 금액을 불우한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많이 본다.​

길거리 노숙자에게 먹을 것이나 작은 돈을 주는 것이나 관광지에서 보면 공연이나 자신의 예능을 보여주는 사람들에게 작은 감사의 표시를 하는 등, 생활속에서 자신이 사용하던 물건을 무료로 제공(도네이션)하는 등 말이다. 이러한 자선의 행위를 자신의 아이들이 배우도록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교육을 한다. 관광지의 공연자에게 감사 표시를 할 때 아이들에게 돈을 가져다 주라고 하는 등.​

나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 그렇게 해야겠다 하면서도 잘 실천에 옮겨지지는 않는 것 같다. 몸에 배어있지 않다보니 그냥 지나치게 된다거나 나 자신보다 여건이 더 좋지 않은 사람들은 분명 있는데 그들에게 배푸는 행위에는 내 시간을 할애하거나 일정부분 신경써야하는 것이 있기에 쉽지는 않았다.​

유대 전통에는 자선을 배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하게 보는 것이 친절을 배푸는 것이라고 한다. 랍비들은 친절이 자선보다 더 높게 평가되는 3가지 이유를 든다.

1. 자선은 돈으로만 행해지지만, 친절은 돈이나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 줄 수 있다.(직접 선의를 배푸는 것 등)

2. 자선은 가난한 사람에게 제공되지만, 친절은 가난한 사람과 부자에게도 배풀 수 있다.(부자를 위로하거나 함께하는 것 등)

3. 자선은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 행해지지만, 친절은 죽은 사람에게 까지도 배풀 수 있다.(죽은 사람을 안장해주는 것 등)

여유가 많던 적던 돈으로만 자선을 하는 것보다 당연히 시간을 들여 친절을 배푸는 행위가 더 위대함은 당연할 것 같다.​

하루하루 생활속에서 남에게 친절을 배풀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찾아올 것이다. 각박한 요즘 세상에 쉽지는 않겠지만, 항상 마음을 열고 작더라도 친절을 배푸는 여유를 가져보는 사람이 많아질 수록 더 훈훈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노력해야겠지만 말이다.​

항상 스스로 질문해 보는 습관을 들여보자.

What would God want me to do?

나는 신앙인이 아니다. 여기서 God 의 의미는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절대자)를 의미한다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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