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배가 고파요’ 라고 말할때

한국에 귀국한지 곧 10일째이다. 코비드로 14일 격리중이라 밖을 나가보질 못한다. 집에 갇혀 있는 듯 보이겠지만 답답하기 보다는 편안하다. 그것도 매우 매우 편한하다.​

고국이라 그런가? 아니면 밥 먹을때 되면 따박따박 우리 마눌님이 먹을 것을 가져다 주는 것 부터서 작년 두차례의 이사짐 정리에 시달렸던 것도 그렇고 이젠 딱히 신경쓸게 없으니 그런 것인가?​

뭐 미국에 있을때 특히나 작년에는 집에서 몇일을 나가지 않고 있었던 적도 많았고 바깥 구경이라고는 마트가거나 별이와 함께 산책,, 음.. 딱히 많지가 않았긴 하다. 어쨋건 그 덕에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해 나갈지 정리하는 시간도 되서 좋다.


한국에서 태어나 쭉 살아오다 비행기 한번도 안 타본 촌놈이 호주 간다고 첨 타본 비행기를 시작으로 여행으로 방문한 나라들을 제외하고 현지에서 살아본 호주, 중국 대략 1년 정도, 미국에서 10여년을 살아 봤다.​

호주에 있을 때는 호주에서 살고 싶다 정도로 참 좋았다. 지냈던 시기도 중요하겠지만 그 당시 한국은 한창 개발 국가였다. 실제 호주에 있을 때 들려온 소리가 ‘한국 망했다더라’ 라는 것.. IMF 가 왔을 때다.​

이후 세월이 흘러 중국에서 지내볼 때는 ‘한국이 좋긴 좋아’ 라고 느꼈더랬다. 한국이 많이 좋아졌었다. 예전에 비하면 지금도 한국은 많이 좋아졌고 앞으로도 더 많이 좋아질 것이다. 그런데 젊은 친구들은 헬조선 같은 말을 하며 실제 좋은 점 보다는 불편한 점에 더 할말이 많다고 한다. 당연 그 예전과 현재를 비교해 볼 수 없는 세대이기에 그러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겠다.​

어쨋거나 그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 9년을 살아보니, 그것도 아이 키우면서 살았으니 나름 미국 속에서 살아보았고 약간은 미국을 알겠다 싶은 정도이긴 하다. 결론은..

한국이 더 좋다

서두가 길어버렸다. 다시 돌아와 미국에서 지내다 보면 큰 대도시에는 노숙자, 걸인들이 많이 보인다.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LA 등 다운타운을 비롯하여 프리웨이 주변, 주택지가 아닌 외각구역 등 적당한 보금자리가 만들어질 공간이 있으면 여지없이 노숙자들의 텐트와 천막들이 보인다. 2008년 주택위기 이후 더 많이 심해진 듯 하다.​

하지만 그 전에도 다운타운에서는 구걸하는 노숙자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요즘은 시티에서 나름 관리를 해서 덜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만. 실제 더 많은 노숙자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힘들게 지내고 있는 것은 맞다.​

미국인들은 노숙자들에게 자선, 적선을 많이 한다? 그런 것 같긴 하다. 다민족 국가이다보니 미국인이라면 여러 인종을 포함한다. 유대인을 비롯해서 멕시칸, 아시아인들 모두.. 어쨋든 노숙자들이나 걸인들에게 자선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는 곳이 미국이다.​

IMF 위기때 한국 서울에는 노숙자들이 좀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타 선진국에 비해서 우리나라의 걸인은 그닥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우리나라 걸인들은 지나가는 행인에게 적선을 구하는 비율도 적을 것 같다. 그러니 걸인에게 적선이나 자선을 할 기회는 많지가 않을 것이다.​

내 기억상 예전에는 지하철을 타고자 들어가는 입구 계단 중간에 엎드려 누워서 도와달라고 하는 걸인들이 종종 있었다. 말은 하지 않고 엎드려 있으며 앞에는 모자나 깡통을 놓아 둔다. 그럼 지나다니던 행인들이 한두푼씩 돈을 적선하는 것이다. 문제는 진짜 힘들어서 구걸을 하는지, 아니면 직업(?)으로 구걸을 하는지 알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당시 직업으로 구걸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들었으니, 아침 일찍 자동차로 운전해서 출근하여 유니폼(노숙자 옷)으로 갈아 입고 자신의 영업장소로 가 구걸을 하고, 업무가 끝나면 차로 돌아와 유니폼을 갈아입고 운전해서 집으로 간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렸다. 진실은 알수 없지만..​

사람들이 순수하고 착해서 많이들 도와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처럼 각박한 세상에서는 거들떠나 볼려나 싶다. 장사가 안될까? 아니면 소득 수준이 높아졌고 우리가 지닌 고유한 한국인의 정 으로 인해 더 장사가 잘 될까? 알 수는 없다.​

문제는 진정으로 자선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이런 것까지도 사기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과연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그 옛날부터 걸인은 있어 왔고, 유대인들은 탈무드를 통해 걸인에게 자선하는 행위에 대해 나름 가르침을 준다.

When a man says, ‘Provide me with clothes’, he should be investigated BUT when he says, ‘Feed me’, he should not be investigated.

Bava Bathra 9a

진짜로 힘들고 어려운 걸인은 ‘배고프니 좀 도와주세요’ 라고 하고, 의심의 여지가 있는 걸인은 ‘옷가지를 좀 제공해주세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의 글이니 현재에 단편적으로 적용하면 안된다. 요지는 진짜 배고픔을 겪고 있는 사람은 구걸하는 와중에도 진심이 배어나오고 그렇지 않은 사람과 구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요즘처럼 똑똑한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는 이를 역 이용하는 경우도 분명 있으리라..

​그렇다면 진짜 자선이 필요로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수 없으니 그냥 자선을 안하겠다? 실제 내가 그런 주의였다. 나는 내가 자선한 돈을 그 재단이나 기관이 어떻게 쓰는지 확인이 안되니 자선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직접 그 돈을 불우한 사람에게 주면 주었지 자선하고 싶진 않아 라며 말이다.​

그런 경우들을 굳히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악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신뢰가 점점 없어지는 세상은 맞다. 하지만 아래의 유대 지침을 다시 함 생각해 보았으면 싶다.

The merit of charity is so great that I am happy to give to one hundred beggars even if only one might actually be needy. Some people, however, act as if they are exempt from giving charity to one hundred beggars in the event that one might be a fraud.

Chaim of Sanz(d. 1786)

100명 중 딱 한 사람만이 진정 도움이 필요한 사람일지라도 나는 행복하게 100명을 에게 자선을 할 것이다. 그 정도로 자선의 장점은 대단하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100명 중 한 사람이 사기꾼일 수 있다는 핑계로 자선을 행하지 않는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Leave a Reply